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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구찌는 모래가 많은 바닷가에 입을 의미하는 구찌라는 일본말이 첨가되어 만들어진 이름으로 부산항의 입구에 있는 모래산에서 나왔다고 한다. 당시 토산이라 불렀던 황사산이 모래산이며 모래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며 이 모래는 일제시대 때 부산항 방파제 축소 및 항만공사를 위해 바다를 매립할 때 사용하였다.

60년대 솔개해수욕장에 이어져 남쪽으로 펼쳐지는 400m 해안가는 경치가 아름다워 산책하는 사람도 많았고 해수욕하는 사람도 많았다. 이곳에는 선착장(방파제)이 있어 0.8톤 범선이 30척 정도 있었고 어촌계 회원은 62명이나 되었다. 선착장내 바다 모래바닥에는 조그만 조개들이 많이 널려 있었으며 모래알이 가늘고 부드러웠다. 방파제 위에는 해녀들이 잡은 싱싱한 성게, 멍게, 홍합 등을 파는 곳도 있었고 방파제 끝에서 헤엄도 치고 낚시도 하는 사람이 있었다.

모래사장 폭은 20m 정도로 고기잡이 그물을 정비하고 배도 수리하는 곳으로 이용하고 있었고 어구들을 보관하는 대형 어촌계 창고가 있었다. 그때는 주로 고기는 광어와 도다리 등을 수조망으로 잡았는데 곰피, 홍합도 유명했다. 또한 싱싱한 고기가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송백관 등 횟집이 많기로 유명하여 횟집마을로 통했으며 특히 다마네기 횟집은 전국적으로 유명하였는데 이 집의 초장은 감칠맛이 있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는 해마다 마을주민들로 구성된 풍물패가 집집마다 돌면서 동네의 안녕과 발전을 기원하는 풍습이 있었다. 백사장 윗길을 따라 벽돌관 가는 방향으로 주민들이 살고 있었고 마을 끝은 군부대와 철조망으로 경계를 나타내고 있었다. 80년대 중반부터 부산항만 확장사업의 일환으로 모래구찌를 근거지로 한 어촌계는 폐업계를 내었으며 현대화된 부두가 축조되고 항만도로가 정비되면서 그 옛날 아름다운 바닷가, 횟집의 흔적은 사라지게 되었다.

현재는 감만컨테이너부두, 신감만부두, 유니온스틸이 차지하고 있어 그때 모래구찌 정취는 사라졌으나 부산시민공원인 감만시민부두가 개장됨으로써 그 옛날 모래구찌의 정취를 생각나게 한다.

Posted by 금융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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