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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영화계는 재개봉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작품성과 흥행성 구성등 여러가지 측면에서 믿고 보는

영화라는 점에서 영화계는 재개봉 영화에 많은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데요 이미 재개봉 했거나 1월중 개봉 예정인

몇편의 영화를 추려 봤습니다.

 

이미 본 영화도 있고 개봉당시 흥행을 하지 못했으나

영화계의 호평을 받아 다시금 개봉하는 영화도 있어서

골라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러브레터

 

이와이슌지 감독의 일본영화로

1999년 개봉하였고 이 후 2013년에 재개봉 한 후

2016년 1월에 다시한번 재개봉 하는 영화로

첫사랑의 아련한 추억을 생각하게 하는 일본 특유의

감성영화 입니다.

"오겡끼데스까"

러브레터의 명대사로 몇번을 본 영화지만

다시금 눈길이 가는 영화입니다.

멜로영화의 전설로 남을 명작으로

20여년전의 첫사랑에 대한 추억을 다시금

세월이 지나 아들 딸과 다시금 보게 된다면

어떤 추억이 생길지 사뭇 기대됩니다.

 

 

 

인터스텔라

 

거장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만든 SF대작으로

2014년 개봉당시 1천만 관객을 동원한 흥행대박

영화입니다.

2016년 1월 14일 재개봉 될 인터스텔라는

개봉당시 과학이론을 정교하게 묘사했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과학 상상력을 동원해줄 좋은 교재라는

평을 받으며 부모와 아이가 같이 봐야 할 필독영화로

많은 붐을 일으켰습니다.

 

 

169분에 이르는 긴 상영시간,난해한 과학적 요소등

여러가지 어려운 점이 많은 영화 인터스텔라가

한국에서 유독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한국의 교육열이

한몫했다는 이야기는 다시금 재개봉될 인터스텔라의

관심요소이기도 합니다.

 

 

사망유희

 

세기의 액션영웅 이소룡이 주연한 영화 사망유희는

당시 이소룡 신드롬을 일으키며 전세계적으로 흥행한

영화입니다.

1978년 개봉당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소룡의 몸짓을

따라하며 액션열풍의 중심에 있었는데요 올 1월 아직은

개봉날짜가 정해지지 않았으나 다시금 이소룡을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벌써부터 들뜹니다.

 

 

사망유희는 이소룡의 마지막 유작으로

지금의 액션과는 사뭇다르고 어찌보면 현실감이 떨어지는

액션 스타일 일부는 있으나 시대의 아이콘인 이소룡이 왜

당시 인기가 있었는지 사망유희를 통해 분석해보는 것 도

재미를 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로

2007년에 개봉된 영화입니다.

시간여행을 주제로 한 소녀의 성장기를 그린

영화로 개봉당시 상영관이 8개임에도 6만여명을

동원하며 두터운 매니아층을 만든 영화입니다.

 

 

2014년에 한 차례 재개봉되면 다시금 많은 사랑을

받은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오는 2016년 1월14일

재개봉 예정입니다.

일본영화 특유의 잔잔한 감성과 영화를 보고 난 후

여진이 오랬동안 남는 마은 한구석의 잔잔한 파도가

느껴지는 영화입니다.

 

초,중,고등학생 자녀가 있으신 분들은

꼭 같이 봤으면 하는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영화입니다.

 

 

재개봉영화 관전 포인트

 

재개봉영화의 붐이 뜨겁습니다.

영화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 다시금 지난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는 영화가 다시금 영화관에 상영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설레고 흥분됩니다.

 

이토록 재개봉 영화가 붐 인 이유를 생각해보니

일단 작품성,흥행,구성등 다양한 측면에서 이미

검증되었다는 사실과 영화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 다시금 영화를 봤을 때 느끼는 감동

또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20여년전 순수했던 시절에

본 러브레터가 지금 봤을 때의 느낌 혹은 내 아이가

러브레터를 봤을 때 첫사랑에 대한 생각,,, 여러가지가

궁금하기만 합니다.

 

단순 영화의 줄거리가 아닌 많은 부분이 새롭게 느껴질수 있는

요소가 많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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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예능프로에서 대세로 떠오른 왕년의 스포츠스타 농구인 서장훈을 자주보게 됩니다.

특유의 입담과 재치로 김구라와 찰떡 캐미를 선보이며 방송에서 종횡무진 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또 한명의 농구스타가 티비에 자주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현주엽인데요... 90년대 중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 한국농구의 중흥기를 이끈 장본인 입니다.

현주엽은 1994년도에 고려대에 입학해 당시 전희철,김병철등과 호흡을 맞춰 서장훈과 이상민이 버티던 연세대와 라이벌 구도를 펼치며 캠퍼스농구의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1994년도는 인기 방송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배경이 된 해이고 당시 농구열기는 가히 타 스포츠가 비교대상이 불가할 정도로 대중들의 인기가 높았습니다.

당시 캠퍼스농구는 실업팀을 압도할 정도의 경기력으로 많은 팬들을 보유하였고 그 중심에선 현주엽이 있었습니다.

 

 

 

 

현주엽은 고려대를 졸업한 이후 신인 드레프트 전체 1순위로 SK유니폼을 입었고 이후 골드뱅크 코리아텐더 KTF를 거쳐 LG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하였습니다.

코트를 떠난 현주엽은 좀처럼 방송에서 볼수 없었는데 어느순간 신문 사회면에 등장을 하였습니다.

은퇴 후 수십억원의 사기사건등에 휘말려 힘든 나날을 보냈고 그순간 극단적인 생각까지했지만 결국 가족의 힘으로 버텨낼수 있었습니다.

 

 

 

 

현주업은 한창시절 미국NBA농구스타 찰스바클리와 항상 비유되기도 했습니다.

농구 백보드를 덩크슛으로 부술 정도의 파고력과 탄력 파워포인트로는 드물게 트리플 더플을 7차례나 했을 정도의 경기력등 많은 부분이 닮았습니다.

선수생활중 무관의 제왕으로 우승반지가 없다는 점도 비슷합니다.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은퇴한지 6년이 지난 지금 각종 방송과 농구해설자로 변신한 현주엽은 인생 2막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농구코트는 영원한 현주엽의 고향이고 인생의 후반전은 농구인으로 지도자로 헹가래를 받고 싶다는 포부를 확히고 열심히 지금도 뛰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영원한 매직히포 현주엽 지금은 하프타임이 조금 길긴 하지만 다시한번 비상하고 농구발전에 기여하는 진정한 농구인이 되어주길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방송에 나오는것도 재미있어요...어떻게든 연예계에 남을려고 억지쓰는 모습이 아니라 담백한 행동과 말이 더~ 리얼하게 보이는건 저만의 생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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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주말농장을 하는 지인의 고구마밭에 가서

아이들과 하루 밭일을 하고 왔습니다.

당연히 일당은 고구마로 한다라이 받와왔지요~~

이거 고구마도 몇개는 삶아서도 먹고 구워서도

맛있게 먹어지는데 일정양이 넘으니 어떻게

먹어야 할지 난감하더군요

 

 

 

 

그래서 고구마장아찌를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여러 요리고수님들의 조언과 레시피를 필독하여

나름 정리한 것이니 같이 한번 정보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고구마 장아찌 만드는 법

 

재료준비

고구마 5개

조미간장(간장1큰술,물2컵,설탕1컵,

엿1컵,식초2큰술,정종4큰술)

고추장,소금4큰술

 

 

 

만드는 법

깨끗이 씻은 고무마를 알맞은 크기로 썬 다음

고구마 5토막 정도에 소금2큰술을 살살 뿌려준 다음

이틑날 고무라를 체에 밭쳐 물기를 꼭 빼줍니다.

준비된 조미간장에 고구마를 넣고 2달간 보관을 한 후

고구마를 꺼내어 고추장에 넣어두고 먹을 때마다

잘게 썰어서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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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6월 부산에 새로운 명물이 탄생하였다. 감만동(모래구찌)에 위치한 감만부두시민공원으로 감만시민부두라고 한다. 유니온스틸부산공장과 신감만부두 사이에 만들어진 해상공원이다.

감만시민부두는 방파제를 겸한 길이 551m의 선박접안시설과 18천여평방m의 배후부지에 해양전시관, 모형등대, 전망대, 족구장, 농구장, 테니스장, 낚시터 등을 갖추고 있다.

감만시민부두의 특징은 부산항을 입출항하는 대형컨테이너선들의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는 부두친수공간이라는 점과 가족중심의 여가와 운동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든 휴식처다. 지금은 여러가지 대중교통수단이 들어와 있지 않아 승용차를 이용해야 한다. 머지않아 관광선승선프로그램 등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한다. 입구는 모래구찌 감만부두 정문 오른쪽 끝에 출입문이 있으며 입장료는 무료이며 주차비는 유료로 시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요즘 낚시꾼들이 많이 이용하며 영도, 자성대부두, 연합부두가 바로 앞에 보이며 등대가 있는 곳으로 해양경찰경비정 등이 정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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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식수가 각 가정에 설치된 상수도관을 통해 급수되지만 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감만본동에는 학교 앞 우물, 버스종점 앞 우물, 감만시장우물 등이 사택에는 샘물터우물이 있었다. 그 당시 주민들은 이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양동이에 담아 머리에 이기도 하고 물지게를 이용하기도 하여 각 가정에 가져와 사용하였다. 그리고 이 우물터에서 그릇도 씻고 채소도 씻고 빨래도 하였다.

또한 이곳에서 이웃 아낙네들끼리 동네이야기도 나누며 정보교환 장소로도 이용되었다.

우리들은 간간이 물지게를 지고 낑낑거리며 물을 담아 집에 있는 물독을 가득 채우고 한 기억이 난다. 1년에 한번 정도 우물터 관리 명목으로 관계하는 어른이 집집마다 다니며 관리비를 걷어가는 모습도 보았다.

그 당시 물이 귀하기 때문에 빗물을 드럼통에 담아 허드렛물로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빨래는 산동네 아래쪽 논둑아래 바위 많은 곳에 가서 흐르는 깨끗한 산물에 빨래방망이를 두드리며 빨래를 하곤 하였다.

60년대 후반 시상수도관이 설치되고 공동급수관, 가정급수관이 보급됨으로써 우물도 점점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70년대 초반에도 수도물 사정이 좋지 않아 제대로 가정에 급수가 되지 않아 공동급수관 앞에 줄을 서서 물을 배급받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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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에 감만동에는 기독교 교회가 2곳 있었다.

아래강변에 있는 감만교회는 1952년 감만동 85번지에 설립되었다. 지금의 쌍희반점(중국집) 근처에 있었고 교회입구는 골목길에 접해있고 앞에는 넓은 밭이 있었다. 이곳은 높은 종각이 있어 새벽 ,저녁의 기도시간이 되면 이 교회 종지기가 종에 달린 줄을 당기면 종소리가 딩동네를 울린다. 건물은 단층으로 천정이 높으며 이웃의 동항교회보다 시설이 좋았다고 생각된다.

초등학교시절 크리스마스가 되면 동네친구들은 모두모여 교회에 가곤 하였다. 신발을 잃어버릴까 고무신을 들고 마루바닥에 앉아 찬송가도 부르고 성경말씀도 듣고 하였으며 크리스마스 날 아기예수탄생에 대한 연극도 보고 선물도 받고 하였다.

또 해마다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당시에 야간통행이 금지된 시절이었는데도 신도들이 찬송가를 부르며 줄지어 다니곤 하였다. 감만교회는 1978년 감만동 134번지인 동담산 언덕으로 자리를 잡아 대규모 현대시설을 갖춘 교회를 신축하여 이전하였다.

그리고 동항교회는 현재의 감만동 142번지에 위치하며 1955년 천막으로 설립하여 1956년 현재의 위치 뒷편에 작은 규모의 판자로 된 건물을 이곳 뒷편 언덕에 지어 운영하였다. 교회 뒤편 언덕으로 난 오솔길은 지금도 이용되고 있으며 이 길 따라 가면 길 언덕아래 당시 대나무밭이 있었고 교회 아래 평지는 넓은 논이 있었다. 당시 동항교회 종은 작은 종으로 감만교회 종보다 작았다. 이후 동항교회는 몇 차례의 시설 확장으로 현재의 위치에 대규모 현대시설을 갖춘 동항교회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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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대보름이면 부산남구 감만동일대 모래구찌, 솔개바닷가에는 굿판이 곳곳에 벌어졌다.

동동동동맑은 북소리가 밤하늘을 타고 올리곤 한다.

오색색동옷을 입은 무당이 방울을 흔들며 춤추면서 바다에 빠진 자의 영혼을 달래기도 하고 용왕님께 풍어를 기원하고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기도 하였다. 또한 모래구찌방파제 끝에는 소원을 빌러나온 아낙네들이 켜 놓은 촛불 앞에서 손을 비비며 축원하면서 소지를 불살아 올리곤 하였다.

이때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호롱불이나 호야불을 켰던 시대라 굿을 하고나서 두고 가는 양초는 동네아이들에게 인기가 있었으며 지금의 감만시장 근처에 초공장도 있었다.

그리고 해질 무렵이면 홍곡산 곳곳에서 빈 논밭 여기저기에서 동네사람들이 달을 보고 소원을 빌고 했으며 아이들은 줄을 빈 깡통에 불씨를 넣어 빙빙 돌리는 쥐불놀이, 볏단을 모아 태우는 달집태우기, 가마니에 불을 태워 끌고 다니는 놀이를 주로 하였다. 이때쯤이면 동직원이나 학교선생님들이 화재예방, 산불예방을 위해 단속반을 편성하여 홍곡산, 마을 여기저기를 다니며 지도활동을 하였다.

낮에는 족제비를 맨 사냥꾼을 앞장세운 마을풍물패가 고깔을 쓰고 꽹과리, 소고, , 징 등의 악기를 두드리며 줄을 지어 집집마다 돌면서 집안의 안녕을 빌어주고 쌀, 돈을 받아가곤 하였다. 그때는 동네아이들에겐 큰 볼거리로 풍물패를 졸졸 따라 다니며 구경하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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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나 논,밭,살길을 가다보면 어디서든 흔하게

민들레를 볼 수 있습니다.

어떤것은 크고 어떤것은 작고 생김새는 죄다 민들레인데

크기와 모양이 조금씩 다릅니다.

우리는 흔히 똑같은 민들레라고 생각하지만 토종민들레와

서양민들레가 각기 다릅니다.

 

 

 [토종민들레]

 

[서양민들레]

 

우리가 흔하게 보는 민들레는 죄다 서양민들레 입니다.

서양에서 유입되어 우리나라 토양에 맞게 뿌리를 내린

종인데 서양민들레는 꽃을 받치고 있는 꽃받침이 뒤로

젖어진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반해 토종 민들레는 꽃받침이 뒤로 안젖어지고

꽃을 감싸고 있는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민들레는 줄기가 따로 없고 잎이 뿌리에서 바로 나옵니다.

민들레의 꽃은 한송이 처럼 보이지만 작은 꽃들이 모여서

피고 꽃을 자세히 보면 꽃잎 한송이 한송이에 암술과 수술이

달린 꽃 한송이 입니다.

 

 

 

 

민들레 뿌리효능

 

민들레는 관상용 뿐만이 아니라 약초로서 효능도 뛰어난데요

한의학에서 민들레의 약명은 "포공영"이라고 합니다.

민들레 꽃이 만개했을 때 민들레의 뿌리를 캐서 약으로 사용합니다.

열을 내리고 기침과 가래를 삭이는 효능이 뛰어나고 우리몸에 쌓인

나쁜 독소를 제거하는 효능도 뛰어납니다.

 

 

 

 

아기를 낳은 엄마가 젖이 안나올 경우 민들레뿌리 달인물을 먹으면

젖이 잘 나오고 피부에 종기가 생기거나 상처가 낫을 때 민들레를

짓찧어서 환부에 붙이면 상처가 잘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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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개마을 북쪽으로 감만, 용당 주민들이 이용하는 양지바른 공동묘지가 있고 그 한가운데 조그만 연못이 있었다. 지금 부경대 용당캠퍼스 일대이다. 공동묘지를 가로질러 솔개에서 용당으로 가는 오솔길이 있었으며 공동묘지의 입구에는 상여를 비롯한 장사에 쓰이는 물건을 놓아두는 기와지붕으로 된 나즈막한 상여집이 있었다.

그 당시는 사람이 죽으면 상여를 메고 공동묘지에 매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휘황찬란한 오색깃발을 바람에 날리며 딸랑딸랑 하는 종소리와 뒤를 잇는 상여꾼의 구슬픈 후렴소리, 망자의 가족들이 곡소리를 내며 가는 꽃상여 행렬은 당시에는 마을사람들에게 상당한 볼거리였다. 상여가 마을어귀를 벗어날 쯤이면 상여꾼들은 상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등 여러 핑계를 대며 상여를 내려놓고 가지 않았다. 그러면 유가족들은 음식상을 차려내고 상여에 쳐진 새끼줄에 돈을 꽂는 등 성의를 보여야 상여는 마을 어귀를 벗어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때는 이 근처가 동항초등학교 뒷산이라 소풍지로 이용되었다. 공동묘지 북쪽에는 계단식 논이 있었고 그 위쪽으로 옛 항공대학 건물터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용당장 고개길이 있었다.

지금은 부경대학교 용당캠퍼스가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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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구찌는 모래가 많은 바닷가에 입을 의미하는 구찌라는 일본말이 첨가되어 만들어진 이름으로 부산항의 입구에 있는 모래산에서 나왔다고 한다. 당시 토산이라 불렀던 황사산이 모래산이며 모래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며 이 모래는 일제시대 때 부산항 방파제 축소 및 항만공사를 위해 바다를 매립할 때 사용하였다.

60년대 솔개해수욕장에 이어져 남쪽으로 펼쳐지는 400m 해안가는 경치가 아름다워 산책하는 사람도 많았고 해수욕하는 사람도 많았다. 이곳에는 선착장(방파제)이 있어 0.8톤 범선이 30척 정도 있었고 어촌계 회원은 62명이나 되었다. 선착장내 바다 모래바닥에는 조그만 조개들이 많이 널려 있었으며 모래알이 가늘고 부드러웠다. 방파제 위에는 해녀들이 잡은 싱싱한 성게, 멍게, 홍합 등을 파는 곳도 있었고 방파제 끝에서 헤엄도 치고 낚시도 하는 사람이 있었다.

모래사장 폭은 20m 정도로 고기잡이 그물을 정비하고 배도 수리하는 곳으로 이용하고 있었고 어구들을 보관하는 대형 어촌계 창고가 있었다. 그때는 주로 고기는 광어와 도다리 등을 수조망으로 잡았는데 곰피, 홍합도 유명했다. 또한 싱싱한 고기가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송백관 등 횟집이 많기로 유명하여 횟집마을로 통했으며 특히 다마네기 횟집은 전국적으로 유명하였는데 이 집의 초장은 감칠맛이 있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는 해마다 마을주민들로 구성된 풍물패가 집집마다 돌면서 동네의 안녕과 발전을 기원하는 풍습이 있었다. 백사장 윗길을 따라 벽돌관 가는 방향으로 주민들이 살고 있었고 마을 끝은 군부대와 철조망으로 경계를 나타내고 있었다. 80년대 중반부터 부산항만 확장사업의 일환으로 모래구찌를 근거지로 한 어촌계는 폐업계를 내었으며 현대화된 부두가 축조되고 항만도로가 정비되면서 그 옛날 아름다운 바닷가, 횟집의 흔적은 사라지게 되었다.

현재는 감만컨테이너부두, 신감만부두, 유니온스틸이 차지하고 있어 그때 모래구찌 정취는 사라졌으나 부산시민공원인 감만시민부두가 개장됨으로써 그 옛날 모래구찌의 정취를 생각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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