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철강'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5.11.16 60년대 감만동 기업 1
  2. 2015.11.06 남구 감만동 예전의 어업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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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당시 감만동에는 농지가 많았으며 마을은 크게 본동, 모래구찌, 솔개, 산동네, 아래강변, 사택 등으로 나누어져 형성되었다. 그리고 지금과는 달리 산동네 말고는 주택들이 평지에 있었고 농지는 산동네 부근 땅, 버스종점 부근 땅, 지금의 감만시장 땅, 119안전센타 뒤쪽 땅, 한국주철관 아래쪽 땅, 모래구찌 입구쪽 땅, 솔개고개 뒤쪽 땅 등으로 넓은 편이었다.

그리고 감만동은 바닷가에 위치하여 육상, 해상, 철도교통이 발달되어 있어 공장입지 조건으로 좋은 편이었다.

60년대 기업형태를 갖춘 공장으로 사택에 대형수도관을 생산하는 한국주철관이 평지에 자리잡고 있었고 아래강변에 보세창고인 태화창고 옆에 부산파이프공장 그리고 돌산에서 생산되는 돌을 잘게 부수는 모나스공장이 있었다. 또한 그 위쪽에 포장지를 생산하는 한국수출포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인공조미료를 생산하는 아지노모도공장이 모래구찌와 솔개에 있었고 돌산쪽에 극동정유, 포리포에 철강회사인 연합철강이 생겼다.

소규모공장으로 본동에는 지금의 동항초등학교 교문아래쪽에 망치공장, 낚시공장, 철공소가 2군데, 방아간 그리고 지금의 감만시장쪽에 초공장이 있었다. 그리고 아래강변 바닷가(감만포)와 동담산쪽 땅은 해방 후부터 지금까지 군사지역으로 이용됨으로써 민간인들의 출입이 제한되었다.

Posted by 금융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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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모래구찌]

감만동 지역의 사람들은 예전 1919년까지 지금 버스종점 아래부터 119안전센타 부근 지역은 바다로 되어있었다. 감만동은 감만포, 포리포, 모래구찌, 솔개바다로 둘러싸여 주로 어업에 종사하였으나 1927년 지금 버스종점아래 바다가 매립됨으로써 8.15 해방 이후로는 반농반어업의 생활을 하였다. 어업활동의 범위는 용당 신선대 앞에서 영도 아치섬까지의 연안이며 어업 방법은 어선에 2명의 어부가 타고 그물을 바다에 놓아 손으로 당겨서 고기를 잡는 방법인 수조망이었다. 어획물은 주로 광어와 도다리, 멸치 기타 잡어가 잡혔고 해조류는 미역, 곰피, 우뭇가사리가 채취되었다. 어획물은 주로 범일동 시장이나 주변 7곳 정도의 횟집에 판매하였다. 이때 아침에 동네마다 싱싱한 고기를 얹고 팔러 다니는 행상 아주머니들이 많았다.

감만동 어촌계는 1965년 조합원 42, 준조합원 20명으로 구성되었다. 포구(모래구찌)는 전체길이가 전 400m이며 모래사장의 폭이 20m정도였으며 모래사장 부근에 공동 작업실이 있었고 모래사장이나 방파제에서 출어준비를 위한 작업을 하곤하였다. 발파제와 모래사장, 선착장에는 0.8톤에서 2톤 규모의 범선(돛단배) 종류의 어선들이 30여 척이나 되었다.

감만동 어업의 쇠퇴는 관계기관에 매립허가를 얻은 성창기업, 연합철강, 극동정유, 동명목재 등의 바다매립과 공장건설로 어장이 상실되면서 어민들은 어업보상을 조금 받고 1985년 어촌계의 활동이 중단되었다고 한다.

Posted by 금융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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