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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1.16 60년대 감만동 기업 1
  2. 2015.11.12 1960년대 부산남구 정월대보름 풍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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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당시 감만동에는 농지가 많았으며 마을은 크게 본동, 모래구찌, 솔개, 산동네, 아래강변, 사택 등으로 나누어져 형성되었다. 그리고 지금과는 달리 산동네 말고는 주택들이 평지에 있었고 농지는 산동네 부근 땅, 버스종점 부근 땅, 지금의 감만시장 땅, 119안전센타 뒤쪽 땅, 한국주철관 아래쪽 땅, 모래구찌 입구쪽 땅, 솔개고개 뒤쪽 땅 등으로 넓은 편이었다.

그리고 감만동은 바닷가에 위치하여 육상, 해상, 철도교통이 발달되어 있어 공장입지 조건으로 좋은 편이었다.

60년대 기업형태를 갖춘 공장으로 사택에 대형수도관을 생산하는 한국주철관이 평지에 자리잡고 있었고 아래강변에 보세창고인 태화창고 옆에 부산파이프공장 그리고 돌산에서 생산되는 돌을 잘게 부수는 모나스공장이 있었다. 또한 그 위쪽에 포장지를 생산하는 한국수출포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인공조미료를 생산하는 아지노모도공장이 모래구찌와 솔개에 있었고 돌산쪽에 극동정유, 포리포에 철강회사인 연합철강이 생겼다.

소규모공장으로 본동에는 지금의 동항초등학교 교문아래쪽에 망치공장, 낚시공장, 철공소가 2군데, 방아간 그리고 지금의 감만시장쪽에 초공장이 있었다. 그리고 아래강변 바닷가(감만포)와 동담산쪽 땅은 해방 후부터 지금까지 군사지역으로 이용됨으로써 민간인들의 출입이 제한되었다.

Posted by 금융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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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대보름이면 부산남구 감만동일대 모래구찌, 솔개바닷가에는 굿판이 곳곳에 벌어졌다.

동동동동맑은 북소리가 밤하늘을 타고 올리곤 한다.

오색색동옷을 입은 무당이 방울을 흔들며 춤추면서 바다에 빠진 자의 영혼을 달래기도 하고 용왕님께 풍어를 기원하고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기도 하였다. 또한 모래구찌방파제 끝에는 소원을 빌러나온 아낙네들이 켜 놓은 촛불 앞에서 손을 비비며 축원하면서 소지를 불살아 올리곤 하였다.

이때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호롱불이나 호야불을 켰던 시대라 굿을 하고나서 두고 가는 양초는 동네아이들에게 인기가 있었으며 지금의 감만시장 근처에 초공장도 있었다.

그리고 해질 무렵이면 홍곡산 곳곳에서 빈 논밭 여기저기에서 동네사람들이 달을 보고 소원을 빌고 했으며 아이들은 줄을 빈 깡통에 불씨를 넣어 빙빙 돌리는 쥐불놀이, 볏단을 모아 태우는 달집태우기, 가마니에 불을 태워 끌고 다니는 놀이를 주로 하였다. 이때쯤이면 동직원이나 학교선생님들이 화재예방, 산불예방을 위해 단속반을 편성하여 홍곡산, 마을 여기저기를 다니며 지도활동을 하였다.

낮에는 족제비를 맨 사냥꾼을 앞장세운 마을풍물패가 고깔을 쓰고 꽹과리, 소고, , 징 등의 악기를 두드리며 줄을 지어 집집마다 돌면서 집안의 안녕을 빌어주고 쌀, 돈을 받아가곤 하였다. 그때는 동네아이들에겐 큰 볼거리로 풍물패를 졸졸 따라 다니며 구경하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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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금융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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